23살,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자
"20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국전에 도전했어요. 첫 도전의 결과는 좋지 않았죠. 그 뒤로도 2년 동안 국전에출품했지만 번번히 낙선했어요. 계속 낙선하다 보니 그 뒤로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렇게 도전을 이어가다보니 올해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아요." 김상지 씨(서예학과 2년)는 제 3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김씨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이 생긴 이래 '최연소 수상자' 로 선정됐다. 국전 서예부문에서 상을 받는 주 연령대가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23살인 김씨가이번 국전에서 특선자로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평소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던 백거이(백락천) 선생의 불출문' 이라는 시를 휘호했어요. 금문으로 양쪽에 중심내용을 크게 적고 양 옆에 협서를 적어보았죠. 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국전을 준비하던 김씨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바로 '욕심' 이었다. "생각만큼의 작품이 나오지 않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죠. 어느 순간 눈물은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해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욕심을 버려야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러나 김씨는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때면 아직까지도 욕심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의 발걸음은 절로 향한다고 한다. 부처님께 절하고 참선을 하다보면 그 많던 욕심들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우연히 접한 서예, 묵향에 사로잡히다
김씨가 처음 붓을 잡은 이유는 단순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이 국어, 영어, 수학 단과학원에 다니는 걸 많이 봤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다니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다른 애들처럼 무언가를 배우고는 싶었죠.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서예학원이었어요. 친 할아버지처럼 잘 대해 주셨던 학원 원장선생님이 너무 좋아 서예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씨.
중학생이 된 그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서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유명한 서예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죠. 그 길로 무작정 그 분을 찾아가 가르침을 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어요. 그 분은 장오중 선생님으로, 제 첫 스승이 되어주셨죠." 김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예를 공부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개인전시를 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개인전시회를 연다는 사실이 서예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예는 보수적인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놈이 나댄다는 눈초리를 받으며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잠시 붓을 놓게 됐죠."
서예는 지고한 예술이며 다른 예술과 달리 덧칠을 하지 못하고 단 한번에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묘한 매력에 이끌려 다시 한 번 붓을 잡게 된다.
김씨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가르침을 받기 위한 길을 헤매다가 지금 그의 스승인 조승혁(수린)선생님을 만났다. "처음 스승님에게 제자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아요. 젊은애가 돈벌이 안 되는 예술을 하려고 하니 정신나간 놈이라며 거절하셨죠. 그러나 받아 주실 때까지 수시로 찾아갔어요. 겉으로는 차갑게 대하셔도 마음은 제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리를 주변분을 통해 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어요."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김씨와 그의 스승은 지금까지도 사제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 그리고 서예가
김씨는 우리대학 서예과 입학을 목표로 입시준비를 했다. 가장 전통 있는 서예과가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다고. "원광대학교 서예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제 스승님과 주변분들이 함께 기뻐해 주셔서 더욱 뿌듯했어요."
김씨에게 하루 연습량을 물었다. "대회에 나갈 땐 하루에 7,8시간, 평상시엔 2,3시간 붓을 들죠. 매일은 힘들더라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어요. 평소엔 먹물을 쓰지만 대회준비를 할 땐 먹물을 쓰지않고 직접 먹을
갈아요. 2~3시간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지만 그 시간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작품에 정성을 들일 수 있어요."
김씨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물었다. "앞으로 졸업하기 전까지는 대회에 나가지 않고 기초부터 다시 쌓을 예정이에요. 대 내외적으로 알려진 것 만큼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실력을 쌓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앞으로 '조건'을 내세우기 보다는 맹목적 으로 서예를 가르치는 서예가가 되고 싶다는 김씨. 존경받는 스승으로 거듭날 그의 행보를 지켜보자.
김가현 기자 | fkdhs3@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