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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시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인생의 2막
시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인생의 2막
신문방송사2010-11-15

김완용(한국어문학부, 10학번)"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 36년간 공군으로 재직하고 2010년 3월 우리대학 한국어문학부에 입학해 만학도의 꿈을 이루고 있는 김완용 씨(한국어문학부)를 만나봤다.

"1969년 공군에 자원입대해 36년 2개월간 복무를 했습니다. 그동안 시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03 년까지 공군으로 재직한 후 2010년 만학도 전형을 통해 우리대학에 입학한 대학 새내기 김완용시인.

그는 196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군으로 자원 입대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공군 지원 당시 홍보요강 중 하나가 '야간학교'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낮에는 군에 복무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자'는 결심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막상 입대를 하고 보니 공부할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 사병으로 입대해 공부를 하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군사정권 시절이라 아침에 일을 시작하면 새벽 l시~2시까지 근무하는것이보통이었다.

당시 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간직해 온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인이라는 꿈이었다. 시인을 꿈꾸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문예반을 통해 월춘 이기만 선생의 지도를 받게된 것이다.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지만 시 창작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력은 군에 입대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70년대에는 〈시인의 집〉이라는 문학단체에서 여러 동인들과 어울려 서로의 시에 대해 품평을 하곤 했다. 이 단체는 글을 쓰는 동인이 200명 가량 됐는데 문학단체 중에서는 큰 규모였다. 당시 그는 '사월학' 이라는 시를 창작했다. 출판의 규제가 있어 책으로 발간되지는 않았다. 시는 4.19 혁명을 찬양하고 5.16 군사정변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군인이었고 군인이 참여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지인이 "군인 신분으로 위험한 일이 아니냐 ! 시를 쓰고 싶다면 군인을 포기하고 군인으로 남고 싶다면 시를 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말에 그는 "당시 군대에 입대한 지 5년반에 넘어가던 시기였고 당시 아내와 아이가 있어 그 이후 30년 가까이 절필을 했다"고 말했다

"공군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당시 군에서 공시 18기 부터 31기생의 교육을 지원히는 업무를 담당했다. 최근 공군 참모총장이 공군 24기생인데 내가 교육을 담당했던 후배들이 어느덧 리더의 자리에 있는 것을보면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2003년 전역한 이후 그는 온돌마루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생산부장으로 있기도 했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골프도 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지난해 환갑(61세)을 맞이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퇴직후 여유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즐거울 줄로만 알았는데 뭔가 마음이 공허하다. 내 남은 인생,난 무엇을 하며 살아야야 할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글쓰기,학업에 대한 끈을 이어 나가는것 이었다.

만학도 전형을 통해 그는 24년 먼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대전에서 익산까지 1시간 30분을 달려와 수업을 듣는데 수업시간 30분전에는 항상 강의실에 도착해 있다고 한다. 처음에 대학에 입학한다고 했을 땐 가족들이 "남은 인생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즐기며 살지 왠 공부냐"라고 반대도 했지만 약 1년이 지난요즘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래서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 더욱 멋진 가장이 되기 위해 가방만 들고 학교로 통학하는 것이 아닌 결과물을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보다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만학도로서 고충은 있을 터,"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노력 하지만 힘들 때가 많다"며 "특히 조 발표가 있을 땐 첨단세대를 따라 갈수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했다.

그의 꿈은 우선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다. 이어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문학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의 주머니 안은 자신의 시로 채워져 있다. 항상가슴에 자신이 쓴시를 품고 다니는 모습에서 "시인은 글로 말을 해야 한다"는그의 말이 더욱 다가왔다.

〈붕어빵〉
촉수 여린 불빛아래
비늘을 털며
단팔 사랑을 배고
세상 밖 끌려나온
가슴 뜨거운 붕어 한마리
아이놈
시린 손바닥에 누워 달콤하게
겨울 녹이고 있다

그의 시〈붕어빵〉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시인으로 남아 한국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그날이 기대된다.

2010.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