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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시험 합격 화제-홍호성 동문(법학전문대학원 4기)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시험 합격 화제-홍호성 동문(법학전문대학원 4기)
신문방송사2015-05-26

몸을 낮춰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 해결해주는 조세 전문 변호사 될 것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4기인 홍호성 동문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등 국가고시 3관왕을 달성해 화제가 됐다. 원대신문에서는 홍호성 동문을 만나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합격 과정과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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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제가 회계사 일을 시작한 지는 19년이 됐어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에는 전주에 있는 법무법인 바름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요.

늦은 나이에 로스쿨 입학은 대단한 용기로 보여요. 로스쿨 입학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언어, 추리, 논술을 공부해야 해요. 언어, 추리, 논술은 책을 많이 읽으며 소양을 쌓는 데 집중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문제집을 사서 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나갔지요.
외무고시, 행정고시도 시험 추세가 바뀌고 있어요. 암기력도 좋아야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되고 있어요. 또한 영어 점수도 중요해요. 저는 군 복무를 카투사에서 했기 때문에 영어는 자신 있는 편이었어요. 회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영어를 놓은 지는 꽤 됐지만, 토익은 기본적으로 940점대 이상은 나왔어요. 로스쿨 입학 전에 합격률도 분석했어요. 절반이 안 되게 합격한다고 판단했고, 41살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부했어요.

입학 후 로스쿨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늦은 나이에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생업은 놓을 수 없었어요. 사무실 일을 돌보면서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남들보다 시간의 효율이 중요했어요. 저는 주로 밤에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일과가 모두 끝난 후 새벽 4시 30분까지 공부했어요.
평일에는 공부를 주로 했으며 원격으로 사무실 업무를 꾸려나갔어요. 반면 주말에는 집에 갔어요. 3학년 때는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사무실에는 가지 않았어요. 방학 때는 신림동에 있는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듣곤 했습니다.
공부할 때는 절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러한 신념으로 공인회계사 준비 시절처럼 1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하며 공부했어요. 공간이 넓으면 자고 싶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들곤 하는데, 책상과 침대만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통제했어요. 변호사 시험은 여러 번 볼 수 있지만, 한 번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는 안 볼 각오로 공부했어요.

조선대학교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로스쿨 시절에 바라본 원광대학교는 어땠나요?

저는 학부 시절 굉장히 우울한 학생이었어요. 지방 사립대에 왔다는 사실에 패배감이 상당했어요. 열등감 역시 많았죠.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어리석었다고 생각해요. 인생 전체를 보고 살았어야 하는데, 그 때는 그러지못 했으니까요.
원광대학교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현실은 고등학교 테두리에서 마치 인생이 모두 결정되는 것처럼 만들어요.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면 안돼요. 지금 당장 패배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때 하지 못한 공부를 대학 때 2배, 3배 채운다고 생각하면 돼요.
조선대학교 역시 원광대학교와 같이 지방사립대에요. 누구보다도 지방대 학생들의 애환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인생 전체를 보고 살아야 해요.
41살에 입학한 원광대학교는 밝아 보였어요. 제 인생은 그 때와 달랐기 때문이죠. 고등학교 때 소위 명문대를 간 친구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 때가 가장 화려했으니까요. 현재는 어떨까요?

학부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어린 시절에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식당일을 하셨기에 늘 식당일을 돕거나 배달을 다녔죠. 솔직히 말하면 그 때는 대학을 왜 다니는지도 몰랐어요.
대학 시절에는 영어 공부에 푹 빠지기도 했어요. 한 때는 동시번역가가 되고 싶기도 했죠. 당시 조선대학교에 개설된 영어 강의는 모두 들으러 다녔던 같아요. 하지만 그것에도 만족하지 못해 학원을 다니기도 했어요. 가정 형편도 그리 좋지 못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학원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며 공짜로 학원을 다녔어요. 아마 그때는 장학생이라 불렀던 것 같아요.

당시 학원에서 수강증 검사를 많이 했던 기억도 나네요. 학부 시절 총장 공로상을 받기도 했어요. 아마 회계사 합격자가 유일해서 받았던 걸로 기억해요.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공로상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대학 로스쿨만의 장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공부 외적인 것을 말해도 될까요. 로스쿨 입학 전에는 원불교라는 종교를 잘 몰랐어요. 하지만 입학 후 원불교를 믿게 됐어요. 다른 종교보다 매력적이었던 거 같아요. 로스쿨 내 원불교 동아리에 1학년부터 가입해 법명도 받았어요.
원불교는 믿음만을 강요하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 종교를 가졌기에 원광대학교가 정이 많은 거 같아요. 원광대학교를 다니면서 늘 학교에 정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교수님들 역시 학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던 거 같아요.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변호사 시험은 로스쿨을 졸업하면 응시가 가능해요. 19년 동안 회계사 생활하면서 늘종합적인 컨설팅을 해주고 싶었어요. 수요자들은 종합적인 것을 원해요. 하지만 회계사, 세무사로는 한계가 극명했어요.
수요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고 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변호사 시험을 응시하게 됐어요.

평소 어떤 신념과 신조를 가지고 생활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사실 로스쿨 입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늦은 나이에 돈도 잘 벌면서 왜 무모한 도전을 하냐고. 하지만 저는 도전을 즐기는 편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주위의 시선에 주저했지만 끝내 도전하게 됐어요.
로스쿨 입학 후에는 목표를 입학과 졸업에 두지 않고 변호사 시험 합격으로 설정했습니다. 변호사 시험에 불합격했을 때, 그 이후삶이 굉장히 처참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더욱 공부에 매달렸어요.
남자들은 흔히 핵존심 이라는 것이 있어요.(웃음) 제 명함에 로스쿨 졸업만을 새기고 싶진 않았어요. 사람들은 로스쿨을 그냥 졸업한 사람이라 생각할 거니까요. 4기에 입학한 이유는 오랫동안 고민했기 때문이에요. 1기에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잠시 접어두고, 제가 운영하던 사무실의 시스템을 닦아놓았어요. 만약 제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더라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아마 제가 로스쿨 1기에 합격했으면 사무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또한 주어진 환경에서 늘 최선을 다해요. 지금 인터뷰하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학부생들은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현재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어요. 저보다 4살 어린 친구에요. 저랑 로스쿨 3년 내내 공부했어요. 그 친구도 저와 같이 가정과 직장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후에 변호사가 되어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가족들 역시 빼놓을 수 없어요. 명절에 문득 공부를 하며 울컥한 적이 있었어요.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가족들은 늘 저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여느 또래와 같이 놀이 공원도 가고 싶었을 텐데 제가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사이 훌쩍 커버렸어요.
저는 늘 가슴이 아파요. 우리 아이들의 추억을 갉아먹고 변호사가 된 거 같아서요.
아내 역시 애틋해요. 아이 셋을 키우면서 타박 한 번 하지 않고 응원해줬으니까요. 시험을 준비할 동안 익산까지 도시락을 가져다준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고맙네요.(웃음)

앞으로 변호사 일을 할 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실 건가요?

로스쿨 설립 취지에 맞게 일하고 싶어요. 법조 시장은 문턱이 매우 높아요. 직원들을 거쳐 변호사를 만나는 시스템이에요. 법조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구조죠. 세무시장, 회계시장보다 더 딱딱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최대한 몸을 낮춰서 사람들이 가려운 부분이 뭘까 고민할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주고 싶어요. 또한 조세 전문 변호사를 지향할 것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우리대학에는 많은 고시생들이 있어요. 고시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문득 캠퍼스를 걷다보면 원광대학교에서 고시에 합격했다는 플래카드를 보곤 했어요. 그것을 볼 때마다 박수 쳐주고 싶었어요. 어 려운 환경에서 홀로 공부하는 걸 알기에 그래요.
지방에서는 그것이 더욱 어렵고 처절해요. 제 생각에는 서울 유수 대학의 학생들보다 2배, 3배 더 공부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혼자이지만 좌절하지 마세요. 나중에 웃을 날이 꼭 와요. 어떤 목표가 있던지 현실을 기반으로 두는 것도 중요해요. 그것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뭐든지 최고가 되길 바라며 노력 하세요.

원대신문 양수호 기자 soohoo6588@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