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향해 비상하다, 런던올림픽
 지난달 5일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 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정재성-이용대 조는 말레이시아 쿠킨키드-탄분형 조를 2-0(23-21, 21-10)으로 이기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결승전에서 덴마크 조에 아쉽게 패했지만 세계랭킹 1위다운 노련함으로 노메달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배드민턴계에 값진 메달을 안겨줬다.
 "4년 동안 금메달을 목표로 준비했기 때문에 동메달이 제 자신에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있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금메달만큼이나 값진 메달이라고 생각해요"라는 수상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정 동문.

 런던올림픽을 준비하기까지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부상이 없었어요. 하지만 1회전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었죠.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부상이었어요. 정강이 피로골절, 허리부상, 어깨부상…선수로서 몸 관리에 소홀히 했던 것이 문제였죠. 그 시기가 가장 아쉬워요. 부상이 없었다면 더 많은 연습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 동문은 이번 올림픽의 한 게임, 한 게임이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첫 게임을 어떻게 치렀고 준결승전, 그리고 3,4위전은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는지 아직도 생생하다고. "선수들은 이기는 게임을 목표로 했지만 저 같은 경우는 마지막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고 싶었어요. 올림픽 나가기 전에 인터뷰도 많이 했고 금메달 후보라고 관심을 받았지만 큰 부담감은 없었죠. 한번 올림픽을 나간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여유가 생기더라고요(하하)"
 주변의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담감은 없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말도 전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라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고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런 국민들의 관심 덕에 배드민턴의 인지도가 높아진 게 아닐까요?"

 은퇴를 결심했다가 다시 도전하다
 "대한민국 배드민턴 선수로서 22년 생활은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원래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어요. 18년 동안 오로지 올림픽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1회전 탈락이라는 아픔 때문에 제 자신이 무척 싫었답니다. 화가 나서 제 스스로에게 화도 많이 내고 욕도 많이 했어요. 거의 두 달 동안 라켓을 잡지 않을 정도로요. 다시 올림픽이란 무대에 서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정 동문이 슬럼프를 벗어난 것은 바로 부모님 덕이었다. "어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병상에 있었는데 항상 우리 막둥이, 우리 막둥이 하면서 제가 잘 되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 더 많이 아프셨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울면서 다짐했어요. 어머님이 바라시던 메달을 꼭 따보자"라고요.
 또 다른 이유는 한 사람이 운동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 끝은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 정 동문은 이 두 가지 목표 덕에 런던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했고 동메달을 획득 할 수 있었다.

 7년 동안 환상의 짝꿍, 이용대
 이용대(삼성전기) 선수는 정재성 동문과 지난 7년 동안 대한민국 배드민턴 남자 복식부문에서 함께 동고동락 했다. 정 동문에게 이용대 선수의 존재는 특별하다. "용대는 둘도 없는 소중한 파트너예요. 함께 한 7년이란시간 동안 좋은 파트너 덕에 행복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똑똑한 친구고 배드민턴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운동하는 친구죠. 제가 형이었지만 이끌린 부분도 많이 있었어요."
 나이 차이 덕에 처음에는 많이 서먹서먹했다는 그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게임도 잘 풀리고 더 편해졌다고 한다. "제 아내보다도 더 친한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답니다(웃음)"

 배드민턴을 향한 열정, 정상에 서기까지
 그의 가족들은 운동선수 출신이다. 정 동문은 아버지, 형들이 모두 역도, 태권도를 해서 어렸을 적부터 운동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체육대회 날반 대표로 계주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배드민턴 감독님이 오셔서 운동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고 했답니다. 부모님 허락도 받지 않고 바로 하겠다고 한 걸보면 배드민턴이 제 인생의 전부가 될 줄 알았었나봐요"
 정 동문은 운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꾀를 부리거나 도망간 기억이 없다.
 "제가 공부를 하도 안 하니까 어느 날 아버지가 조그마한 상에 책하고 칼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러고는 공부할래 아니면 손가락을 자를래 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린아이들은 보통 무서워서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저는 그 당시 손을 자르라며 내밀었어요. 그때부터 아버지가 운동을 시키면 괜찮을 것 같
구나 하고 생각하셨대요"

 천재는 처음부터 똑똑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 키가 158센티였어요. 큰 키에 속했는데 지금 그 당시와 비교했을 때 10센티밖에 안 자랐죠. 굉장히 속상해요. 배드민턴은 단신이 해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위사람들의 말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배드민턴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래서 오기가 발동해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운동하느라 수학여행이나 야영은 가 본적이 없어요.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해요. 저는 31년을 살면서 인생의 3분의 1을 배드민턴에 올인 했답니다. 당시에는 배드민턴 외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보이는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원광대학교 입학과 큰 성장
 "고등학교에 졸업한 후 집안 형편으로 인해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2001년도에 삼성전기에 입단했어요. 동기들이 대학교에 입학한 걸 보며 되게 부러워했던 기억이나요"
 1년 동안 실업팀에서 배드민턴을 한 그는 우리대학 김동문 교수(스포츠과학부)의 제안을 받게 된다. 원광대 배드민턴부 최정 감독과 김동문 교수 덕에 원광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2002년도에 원광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했어요. 제 인생이 다시 시작된 거죠. 당시 최정 감독님께서 복식의 매력에 대해 가르쳐 주셨답니다. 그 전까지는 전국대회 우승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4년 동안 우승도 굉장히 많이 해봤어요. 대학교 때의 선수생활이 가장 크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는 우리대학 최정 감독에 대한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최정 감독님의 열정에 많이 놀랐어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만났던 감독님들 중 수첩을 갖고 다니는 분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하지만 최정 감독님은 항상 뒷 주머니에 수첩과 볼펜을 갖고 다니셨죠. 선수 한명 한명을 일일이 체크하셨어요. 선수들의 장 단점을 체크하시고 보완할 점을 기록하셨어요. 대부분의 감독들은 지시하는 역할만 하는 게 보통인데 본인이 먼저 열의를 보이시니 선수들도 열정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다
 정 동문은 내년부터 우리대학에서 지도자로 배드민턴 후배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지도자가 되는 것은 오래 전부터 꿈 꿔왔어요. 최정 감독님의 제안으로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됐죠. 참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제가 해보지 못했던 기술들과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요. 또 키가 작아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바꿔주고 싶고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같이 겪어보며 가르치는 게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루빨리 학교에 와서 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힘들었던 점도 얘기해주고 싶고 허물없이 지내고도 싶다고도 포부를 밝힌다.

 앞으로의 설계
 "원광대 배드민턴부라고 하면 다른 대학 배드민턴 선수들이 부러워해요. 체계적인 배드민턴 교육이 인재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다들 배드민턴하면 원광대, 원광대 하면 배드민턴 이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선배들이 길을 만들어 준 덕에 선수들이 부담 없이 기량을 펼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한 학교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잖아요. 메달을 따고 성과가 따라오니까 더욱 그래요.
 아직 최종목표는 세우지 못했어요. 일단 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가져야 차후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제 마지막 종점이 어딘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지도자가 돼있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대표 감독도 좋고 실업팀 감독도 좋지만 이왕이면 모교에서 마무리 하고 싶어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묻자 "배드민턴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배드민턴을 바라보고 달려왔어요. 다른 것을 바라 볼 겨를도 없었고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운동을 할 때 단 한 번도 웃으며 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보니 제가 운동할 때 웃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다. 항상 힘차게 도전하고 삶의 멋진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정 동문에게 힘찬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앞으로 꿈을 향해 전진해가는 그의 행보를 주목해보자.

이혜민 기자leehm9@wku.ac.kr

<정재성 동문>
원광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2008 스위스오픈, 중국오픈, 홍콩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남자 복식 금메달.
제30회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동메달
2009 말레이시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남자 복식 금메달.
광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12 인도네시아 오픈 슈퍼시리즈 스리미어 남자 복식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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