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광인터뷰

제5회 원광언론인상 수상, 전주 MBC 편성제작부장 임평종 동문(응용미술학과 81학번)
제5회 원광언론인상 수상, 전주 MBC 편성제작부장 임평종 동문(응용미술학과 81학번)
신문방송사2014-03-17

“열심히 하면 인생 잘 풀어나갈 수 있어”

임평종 동문(응용미술학과 81학번)

원광 언론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졸업을 하고 30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로 받은 상 같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분야에서 근무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큰형이 KBS 국장이었습니다. 큰형뿐만 아니라 집안 어른들도 언론에 종사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자연스럽게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마스터 디렉터(MD)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마스터 디렉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마스터디렉터는 방송을 시행하는 과정의 책임자입니다. 저는 마스터 디렉터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부장님은 테크니컬 디렉터(TD)입니다. 기술적인 잘못은 테크니컬 디렉터가 책임지지만, 프로그램이 잘못 나가면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편성 스케줄을 관리 하는 거죠. 마스터 디렉터는 24시간 앉아서 송출을 관리해야 합니다. 4교대로 돌아가는데 한 교대가 8시간 일하고 야근한 교대는 다음 날 쉬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초시계를 매고 계시던데요. 초시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티비를 보다가 화면 밑에 자막이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자막이 일정하게 나가야 하는데 어떤 때는 한참 뒤에 나가고 또 어떤 때는 너무 빨리 나가면 시청자들이 놀라시겠죠. 한 30초 정도의 간격을 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자막을 보낸 후 바로 초시계로 재기 시작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예전에 대통령께서 서거했을 당시입니다. 예를 들자면 A프로를 틀 시간인데 B프로를 틀고 B프로를 틀어야 하는데 A프로를 트는 등 모든 프로가 뒤죽박죽됐습니다. 그때는 일초가 정말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우기에 낙뢰가 내리면 프로그램 모니터가 번쩍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발전소가 4초 내 에 자가 발전합니다. 하지만 발전소가 돌아가도 프로그램이 지워지기도 하죠. 그럴 때는 빨리 복구해서 송출합니다. 예전에 마스터 디렉터 일이 아닌 뉴스PD를 한 적도 있습니다. 뉴스PD는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인데 뉴스가 끝나면 그걸 보도라고 내냐 라며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보고

전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황우석 줄기세포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PD수첩이 방영된 후 MBC가 문을 닫는 줄 알았습니다. 광우병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 안 방송 일을 하면서 많은 에피소드를 겪었습니다.

저도 TV를 좋아하지만 이곳의 수많은 모니터를 보니까 벌써 TV가 물리기 시작해요. 이 일이 지겹지는 않으신가요?

처음에 일을 할 땐 지겨웠습니다. 하지만 계속 일을 하니까 괜찮아졌어요. 다른 채널도 모니터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TV를 한꺼번에 켜 놓고 있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올 때 광고가 언제 끝날 지만 기다리잖아요. 여기는 광고가 몇 분 남았는지 다 보이네요. 제가 몸담고 있는 문화방송(MBC)은 공영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광고로 먹고 삽니다. 반면 KBS는 공영방송이기에 수신료를 받죠. 우리는 시청자를 수용자라고 말합니다. 수용자를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컨텐츠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광고가 더 들어오기 때문이죠. 어쨌든 수용자 입장에서 광고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컨텐츠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광고가 더 많이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대학생활은 어떠셨나요?

저는 김제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약 10년 정도를 통학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첫차 타고 학교 간 다음 막차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등록금이 50만 원이었는데 49만 원을 돌려받는 특대 장학금을 받고 다녔습니다. 더 열심히 하려고 제 전공뿐만 아니라 부전공, 교직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 많은 장점이 됐습니다. 대학생활은 굉장히 열심히 해야 합니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야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릴 수 있습니다. 방송에 꿈이 있다면 이것만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서울 MBC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대학 동문 임정섭 선배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강의를 나갑니다. 그 선배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방학동안 악기를 하나씩 배우라고 말합니다. 배움을 통해 아이디어 창출에 큰 도움을 얻는 거죠. 하나만 한다면 아이디어 창출에 한계가 옵니다. 흔히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끝까지 남으려면 많은 지식이 요구됩니다.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죠.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신 것 같아요. 20대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자란 고향 김제는 소설가 조정래가 쓴 『아리랑』의 배경입니다. 『아리랑』을 읽어봤다면 알테지만 소설 속 등장하는 임경찬은 독립투사입니다. 『아리랑』은 방씨들을 대상으로 썼지만 우리 집안인 임씨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제가 다시 20대가 된다면 국문학을 전공해 우리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습니다.

지금의 20대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모름지기 대학생이라면 열심히 배워 익힌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우느냐 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죠. 예전부터 시대에맞는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인생을 잘 살았습니다. 그 시대에 맞는 공부를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대학생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데이트도 해야 하고 배낭여행도 가야죠. 또 어학공부 해야지, 학점 잘 관리 해야지,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바쁘다고대충 사는 것이 아니고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알려주세요.

91년도에 모교에서 방송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IMF이후로 강연을 안 하고 그 이후로는 10년 동안 전북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노하우들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깨우쳐 주고 싶습니다. 이 일을 몰라서 못 오는 학우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신수연 기자 shinsud@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