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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제4회 원광언론인상 젊은언론인상 수상 전북일보 기자 이강모 동문 (경제학과 97학번)
제4회 원광언론인상 젊은언론인상 수상 전북일보 기자 이강모 동문 (경제학과 97학번)
신문방송사2013-03-18

제1215호-1-제4회 원광언론인상 젊은언론인상 수상전북일보 기자 이강모 동문

2013 원광언론인상 수상
언론문화를 창달하고 우리대학의 명예를 빛낸 동문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원광언론인상 에 조용헌 동문(신문방송학과 82학번)이, 젊은 언론인상 에 이강모 동문(경제학과 97학번)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강모 동문에게 제 4회 원광언론인상 젊은 언론인상 에 을 수상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크게 잘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기자로서 열심히 뛰어 사회를 밝히는 데 일조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또한 자랑스러운 원광인의 한 명으로서 원광인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그동안의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맡은 바 분야에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점이 높게 평가된 것 같습니다. 또한 항시 현장에 답이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전화 취재보다는 현장 취재를 통해 사회의 현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점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12년째 기자생활
이 동문은 우리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전민일보 창간 멤버로 언론에 입문했다. 전북중앙신문과 새전북신문에서 사건 법조 기자로 활동 하면서 지금까지 12년째 언론 취재 보도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전북일보 경제부 기자로 근무 중이다. 전민일보 창간 멤버로 입사해 사표를 내보기도 했고 여러 번 회사를 옮겨 보기도 했습니다. 글을 쓸 능력도 안 되면서 눈에 보이는 정의감만 앞세우기가 일쑤였죠. 그러다 보니 취재원과 크게 싸우기도 하고 고성이 오가며 욕설을 주고받기도 했어요. 때로는 조폭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악의적인 기사를 썼다며 고소도 당한 적이 있었어요. 이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년을 불쑥 넘기게 됐고 이제는 중견 아닌 중견기자가 돼 있어요. 그만큼 어릴 적의 패기는 한풀 꺾인 셈이죠.

 

대학생활과 언론에의 관심
이 동문에게 대학생활에 대해 물었다. 대학생활은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시절이었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장 좋았어요. 사실은 매일같이 술로 보낸 학창시절이었어요. 타지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만큼 자취생도 많았고,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곳은 많았죠. 풍물패 동아리를 들며 꽹과리,장구, 징을 배우게 됐어요. 하얀 소복을 입고 익산역까지 걸어서 순회공연을 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네요.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대학 캠퍼스커플을 했다는 거예요. 같은 과 여학생이었는데 매일 보면서도 또 보고 싶어 전화하고 때론 다투고 화해하고. 이러다 보니 대학시절이 다 갔네요. 공부해 본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기자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 동문. 언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그러한지 물었다. 처음엔 그저 기자가 멋져 보였습니다.
수첩과 펜을 들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를 보면 살아 있다 는 느낌을 받았는데 제가 직접 기자가 되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살인 현장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중립을 지키고 사건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봐야한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죠.

 

 기자로서의 삶
이 동문에게 언론 분야에서의 가장 큰 활동에 대해 물어보니 원언회 에 가입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언론 분야와 관련해 뉴스 시청이나 다른 매체 신문 읽기. 인터넷 기사 쇼핑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습니다. 제게 가장 큰 활동이 있다면 바로 원광대학교 출신 언론인 모임인 원언회에 가입됐다는 거죠. 기자로서 활동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이 동문은 취재 과정에서의 어려움을이야기했다.
수년 전 취재 과정에서 모 검사를 대상으로 취재를 벌이다 주먹다툼까지 갈뻔 한 적이 있었어요. 모 기업체의 고의 부도와 관련된 취재였는데 저에게 그 당시 담당 검사가 반말로 너 뭐 하러 왔냐 , 기자가 그렇게 시간이 없냐 , 너 취재 누구한테 배워 먹었냐 등의 말로 시종일관 피의자 취급을 했다. 그래서 저도 같이 너 뭐하는 사람이냐 , 수사 기법 누구한테 배워 먹었냐로 맞섰고 급기야는 둘이 붙기에 이르렀죠. 나중엔 수사관들이 말려줘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싸움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 검사님과는 현재 형님 동생을 하며 둘도 없는 사이가 됐죠.

 

펜이 가진 힘
이 동문은 기자를 말 그대로 기자라고 표현했다. 기자에서 자 자는 한문으로 놈자자를 써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자를 기자놈 이라고 하죠. 기자는 사생활이 거의 없다고봐야 합니다. 휴일이고 주말이고 새벽이고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기다림의 연속이죠. 항상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해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 일이 좋아요. 뭔가 쓸 수 있는 소스만 있다면요. 기자에겐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기자는 그냥 기자이죠. 기자로서의 보람에 대해 묻자 하루하루가 보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부여한 직급도 아니지만 기자라는 이유로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만나 취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동문에게 최종목표에 대해 물었다. 저는 제가 늙어 죽는 그날까지 펜을 들 힘만 있다면 기자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기자를 이해해줄 수 있는 부인을 만나야겠죠. 제 목표는 바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꿈을 이뤘느냐는 질문에는 꿈을 이뤘다. 아니에요. 전 아직 젊고 내 꿈을 이루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저는 아직 노총각이기 때문에 제 꿈은 사랑하는 여성의 남편이 되는 거예요. 남들은 다 하던데 난 왜 이리도 이루기 힘든지. 라며 아쉬워했다.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
이 동문에게 기자를 꿈꾸는 우리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기자는 강단과 함께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만의 원칙을 세워야죠.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는 성격이라면 기자하기를 포기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또한 기자는 기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전 제 원칙으로 첫째는 인성 둘째도 인성, 셋째는 인간성 을 세우고 이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아무리 실력이 좋은 기자일지라도 인성이 나쁘면 그건 한 명의 이기주의자가 될 뿐입니다. 책 많이 읽으시고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면 좋은 기자가 될 거라고 판단합니다. 후배님들의 건승을 기대하겠습니다. 라며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덧붙였다. 이어 그는 우리대학 재학생 모두에게 충고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전 한시도 자랑스러운 원광인임을 잊어본 적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후배님들도 마찬가지로 원광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매사에 당당히 맞서길 바랍니다. 후배님들, 후회 없는 대학생활 보내시고 사회에 나가면 지역 발전을 넘어 국가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대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이 동문의 소원인 결혼도 이루고, 기자로서의 패기와 열정도 끝까지 간직 해주길 기원해본다.

강신지 기자

koas4@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