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광인터뷰

한국미술협회 익산시지부장 신정자 동문(미술학과, 75학번)
한국미술협회 익산시지부장 신정자 동문(미술학과, 75학번)
신문방송사2013-04-08

 

여성 최초로 한국미술협회 익산시지부장의 자리에 오르다

2012년 제 21대 한국미술협회 익산시지부장에 선출된 신정자 동문(미술학과, 75학번)은 지난 20대 지부장에 이어 2회 연속 선출됐다. 그녀를 만나 어떤 과정을 통해 선출이 됐는지 물어봤다. 저는 2000년도부터 익산미술협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양화 분과장, 제 17대 한국미술협회 익산시부지부장, 제 19대 도지회 이사를 했습니다. 이후 미술협회 활동을 계속하며 지난 2010년 제 20대 한국미술협회 익산시지부장에 출마해 지부장에 선출됐습니다. 그녀는 한국미술협회 사상 여성최초로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 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지부장에 선출이 됐을 때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시대에 미술인들의 이상을 찾자. 안주하는 미술인이 되지 말고 변화를 따라가자! 는 말을 내걸고 당찬 변화의 시대에 당찬 지부장을 해보겠다고 말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줘 당선됐습니다. 다시 한 번 선출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익산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다

신정자 동문이 지부장에 선출되고 익산의 미술이 크게 변했다고 한다. 제가 지부장에 당선되기 전에는 1년에 전시회를 한 번 개최했었어요. 하지만 1년에 전시를 최소한 세번은 해야되지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번 이상 개최한 적도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200명 가량 되는 회원분들이 많은 고생을 하셨죠(웃음) 실제로 신정자 동문이 2010년 2월 4일 지부장에 선출된 후 아트존 전시회 , 스케치 야유회 , 미술인의 밤 등을 개최해 회원들의 화합과 시민과의 소통의 자리를 마련했다. 최대한 시민과 함께하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예를 들어 왕궁리 미술전시관 미술대회 와 YMCA 미술대회 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또 장애인와 함께하는 전시회 를 개최해 함께 활동하는 행사를 주로개최했습니다. 이외에도 그녀는 작가들을 위한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익산시가 관내 우수작품 매입 공모에 3년간 51점을 매입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진행된 일이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힘든 점도 있었지만 작가들의 길을닦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또 벽화사업을 진행해 일자리를 창출했고 부산, 대구, 호남지역과 교류전을 통해 익산의 미술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미술을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고싶다고 한다. 예전에 한국미술협회 최초로이웃사람 작은 그림전 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해 불우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열렸죠. 이 날 번 300만원의수익금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기부 됐습니다.
또한 공익사업을 시작하고 있어요. 익산시영등 1동에 아름다운 거리를 조성하고 있고 지난해는 익산철도 100주년 기념전을 열기도 했고요 그녀는 앞으로도 익산미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익산미술협회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에요. 익산에는 아직 미술대전이 없는데 지역사회 특성에 맞는 미술대전을 추진하고 또 국제교류전 및 서울 인사아트센터 기획전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최용신 작가의 갤러리를 건립하고 타 도시와의 국제교류전을 개최하려 노력 중입니다

 

붓을 잡고 꿈을 그리다

원래 꿈이 미술선생님이었다는 신씨, 그녀의 대학생활을 통해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고한다. 저는 처음에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전 고등학교 삼 학년 때 무조건 외지로 나가자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서울, 제주도, 충청도 등 익산과 떨어져있는 대학을 지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익산이 너무 좋았는지 성신여자대학교 사범대학교에 합격했지만 1학년과 2학년만 보낸 뒤 3학년에 원광대학교 미술교육과에 편입했습니다. 당시 성신여자대학교에서는 고화운 교수님이 저를 가르치셨는데 교수님이 원광대학교로 가셨을 때 같은 시기에 원광대학교에 편입한 기억이 나네요. 그녀는 원광대학교에 편입한 후 서양화를 전공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표현주의적 그림을 주로 그렸어요.
표현주의적이라는 것은 대상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충분히 들어가고 개상을 작가의 의도대로 재분활하는 기법이에요. 예전부터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는 대상을 해체하는 해부학적인 그림을 선호했어요. 예를 들어 뭉크의 <절규> 같은 작품들을 좋아 했었죠. 그녀는 어떻게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것일까? 그녀가 처음 미술을 시작했던 건 중학교 때부터라고 한다. 처음 미술을 접했던 것은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이에요. 그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게 돼 미술부 활동을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대학은 영문과를 지원하려 했지만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미술대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학창시절 미술을 하던 중 잊지 못할 스승님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학창시절 그림이 좋아 화실에 다녔어요. 그 곳에서 현재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김수자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저는 얌전했지만 고집불통 학생이었다고 항상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하루하루 작가의 꿈을 키워갔지만 현실은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계속 활동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은 어려워졌어요.
전업작가는 교직활동을 하는 분들과 달리 생활고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미술작업만으론 먹고살기 힘들었죠 그녀는 잠시 붓을 내려놓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활고라는 벽에 부딪혀 잠시 붓을 내려놓았던 시기가 있어요. 그 때 익산에서 학원을 하며 돈을 버는 데 집중했었죠. 생활이 안정된 후 작가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2000년도부터 다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힘든 날도 많았지만 기쁜 날이 더욱 많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벽에 막힌 듯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그 땐 수십 번, 수백 번을 고심을 하게 되죠. 고민 끝에 마무리 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세상 무엇 보다 기쁩니다.

제1218호-2-신정자 동문과 인터뷰 장면

익산의 천년 백제를 그리는 화가
그녀의 롤 모델은 프랑스 화가인 세잔느라고 한다. 세잔느 는 현대회화의 아버지라 고 불리며 추상미술의 꽃을 피운 화가이다. 표현주의, 상징주의, 입체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화가이다. “제가 세잔느 를 롤모델로 삼은 이유는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에요. 세잔느 는 수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무엇보다 자기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 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 이라는 곳을 모티브로 그렸다고 해요. 저도 백제 30대 무왕의 흔적과 미륵산의 미륵사지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비슷한 것같아요. 그녀는 세잔느 처럼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천년 고도 백제를 그리는 화가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롤모델인 세잔느 처럼 제 고향인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을 주로 그려요. 주로 익산에 대한 작 품을 그리는 편이죠

 

꿈은 아직 깨지않았다

하루하루 쉼 없이 달려왔다는 신씨 바쁜일정이지만 항상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는 항상 바쁘게 살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매일매일 그날 하루가 보람된 일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협회의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제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고 싶어요. 주어진 모든 것에 노력하고 싶다는 신씨, 그녀의 좌우명을 물어봤다. 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항상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그녀의 최종목표는 무엇일까? 당장의 목표는 아니지만 지금 가장 큰 목표는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자 입니다. 오늘을 보낼 때 내일을 준비하며 하루를 소중히 보내는 것이죠. 무엇보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정말 즐겁다면 해라!

신씨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에 다니는 후배들과 작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짧은말을 남겼다. 모질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다고 다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두 성공하기만 바라고 성공한 사람만을 기억하죠. 그러니 학교생활을 하면서 내 정체성은 무엇인가,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가, 오늘은 그림을 그렸지만 내일도 그 다음날도 똑같이 그린다면 계속 즐거울까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하다면 화가의 길을 추천합니다. 그녀는 학생들을 위해 또다른 말을 남겼다. 여러분 모두 하루를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또 본인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매일 준비하세요. 당장 이뤄지는 것보다 마라톤을 뛰는 선수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나 를 점검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신씨, 그녀를 보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소녀 같았다. 그녀는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더욱 준비하고 싶어했다. 무엇보다 가장 한국적인 것, 나의 고향을 사랑하는 화가,모든 일에 감사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그녀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자.

정도영 기자

ehdud3114@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