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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섬진강 따라 흐르는 화폭
섬진강 따라 흐르는 화폭
대외협력홍보과2010-10-26

송만규(한국학과 80학번/화백)[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전주시 진북동 우진문화공간에서 '섬진강, 아침 고요'란 주제로 전시회를 연 한들 송만규 동문(한국학과 80학번). 송동문은 '섬진강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이다. 지난 18일, 송동문을 만나 그의 30년 화백인생과 섬진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고요한 아침의 섬진강을 담은 그림 20여 점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전시장에서 송만규 동문을 만날 수 있었다. 송동문의 이름 석자 앞에 꼭 붙는 수식어는 '섬진강 화가'이다. 그러나 송동문이 '섬진강 화가'로 불리게 된 것은 10년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 송동문은 80년대에 주로 삶의 의미전, 민중판화전에 작품을 내걸었고 90년대에는 마을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가집, 꽃들과 어우러진 풍경을 담아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섬진강을 화폭의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지금도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반면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인데 망각하고 있는 우리들을 보면서 새삼 제대로된 자연을 바라보고 싶었다." 송동문은 섬진강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나서부터는 인간의 삶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넓이와 포근함 그리고 새로운 감성, 새로운 정서를 얻는다고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어떠한 자연보다도 수려하고 맑은 산수를 지닌 섬진강의 풍광이 나를 끌어당겼다. 또 섬진강의 역사, 삶의 풍습,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저절로 붓을 잡게 했다." 그동안 송동문은 섬진강을 소재로 '섬진강, 흐르는 강을 따라 걷다', '섬진강, 언강 끝에서 꽃을 줍다'라는 전시회에 이어 올해 '섬진강, 아침 고요'로 세 번째를 맞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송동문이 매일 아침 섬진강 강변을 산책하면서 느낀 감동과 인상을 담았다.

 

"섬진강의 고요한 아침의 모습은 한낮보다도 더 고요하고 사물들이 잔잔하게 보인다. 산책을 하면서 새벽녘에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들이 이마에 부딪히면 무한한 상쾌함과 더불어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고요함'이라는 것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또 다른 상태, 고요한 너머의 역동성이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가시적인 부분만 봐서는 안 된다. 자연의 밝음과 어둠의 갈림길에 있는 아침은 새로운 사유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송동문은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해 올해로 화력(畵歷) 30년을 맞았다. 그는 미술을 '자신의 삶을 이끌어준 디딤돌'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회의감이 들 때도 간혹 있었지만 미술은 인생 역정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단다. 인생에 굴곡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동문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송동문이 늦깎이로 우리대학을 들어왔을 당시는 혼란의 시기였던 80년대 초였다. 송동문은 그 당시 동료 학생들이 그랬듯이 학생운동뿐 아니라 사회단체에 참여해 인권운동도 같이 했고, 특히 원대신문 만화부장을 하면서 '원석이'라는 만평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과 학내 문제, 사회적 이슈를 담아냈다.

송동문은 원대신문사 시절 당시 자신의 별명을 '쌈닭'이라고 말하면서 "그 당시에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대학신문까지 견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신문에 게재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럴 때면 저는 당시 다른 기자들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학생 기자들을 대표해 주간교수에게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었다. 당시 주간교수를 요즘에도 만날 때면 '너 때문에 힘들었다'라는 말을 한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걷고, 꽃을 줍고, 고요한 섬진강의 아침을 보여준 송동문이 다음에는 어떤 섬진강의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돼 기자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직도 섬진강을 다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일천하다. 계속해서 가시적인 것을 지양하고 아직도 다 그리지 못한 섬진강이기에 더욱더 공부하는 자세로 앞으로도 계속 섬진강을 그릴 것이다."
2008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