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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원불교 사랑에는 국적이 따로 없다
원불교 사랑에는 국적이 따로 없다
대외협력홍보과2010-10-26

원성제(원불교학과 02학번/원불교 연지교당 부교무)[우리 대학원에서 원불교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네팔인으로는 첫 원불교 교무로 임명되어 현재 정읍시 수성동 원불교연지교당에서 부교무로 활동하고 있는 케삽 사르마 파우델(30. 법명: 원성제)교무. 외국인으로서 원불교 교무가 된 이유와 앞으로의 포부 그리고 온가족이 모두 원불교인이 된 그의 원불교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깊은 눈 이국적인 외모와는 달리 유창한 한국어 실력. 바로 원불교 최초 네팔인 교무 케삽 사르마 파우델이다.

 한국말이 정말 능숙하다는 기자의 말에 "지금은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가나다라'도 몰라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원교무는 처음 한국어를 배울 때를 기억한다. 우리대학 어학원에서 한국어(2년 과정)를 배우고 원불교학과에 입학한 원교무는 전공수업 시간에 종교와 관련이 있는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공부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한자가 어려워 한자만 따로 공부를 해야 할 정도 였다. 그래서인지 원교무는 잡념이 없어야 할 수행시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전공공부 때문에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오기 전 원교무는 고향인 네팔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2년간 공부하고 2000년에 우리나라로 유학을 왔다. 네팔의 대학생활은 한국대학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한국 대학은 출석체크도 꼼꼼히 하고 리포트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의 연속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네팔에서는 출석이나 리포트보다는 주로 시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대학은 교수님과 학생들이 친숙하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좋은 대학 문화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원교무가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렸을 때(9세)부터이다. "당시 원광대 한국문화학과 교수님으로 계시던 김범수 화백을 외삼촌의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그 후 1년에 한 두 번씩 교수님을 만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원교무가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김범수 화백과 외삼촌의 권유도 있었지만 평소에 불교에 관심이 많아 불교 철학을 배워 네팔에서 실천하려는 목적이었다. "원불교 교리를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원불교에서는 힌두교에서 소를 숭배하는 것처럼 무조건 대상을 높여서 숭배하지 않고 대상에 맞춰 숭배하는 사상에 마음이 끌렸습니다"라며 원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원교무를 보면서 외국인에게는 어색할 수 있는 원불교 정복이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원교무는 현재 정읍시에 있는 연지교당에서 부교무로 근무하고 있는데 일요일마다 청소년 법회를 이끌고 있다. 또 연지교당의 원광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저를 케찹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고 재미를 느낍니다"

 네팔에서 경찰로 생활하던 원교무의 형 아룬 파우델(법명: 원성천) 또한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교무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며 사촌동생 수바스 그레미(법명: 원성도)도 원불교학과 3년에 재학 중이다. 이렇게 원교무의 가족은 원불교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원교무의 부모님 모두 힌두교 신자이지만 원교무가 원불교를 공부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원교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신념 때문이란다.

기자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를 묻자 "대학교 생활을 할 때에도 방학 동안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일도 하고 원불교에서 배운 마음공부를 바탕으로 상담 활동을 했습니다. 또 정읍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에 연지교당을 쉼터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외국인 근로자들이 함께 여가를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원성제 교무의 법명을 풀이해 보면 이룰 성(成)자에 건질 제(濟)인데 이는 성은을 이루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원교무는 이 뜻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8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