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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원광대학교”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
“원광대학교”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
대외협력홍보과2010-10-25

이복동 동문(법학과,62학번/(주)광진건설 회장)[지난달 22일, 우리대학 정갑원 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이복동 동문(법학과,62학번). 이동문은 지난 2월, 원불교 군종이 국회에 통과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나노 X-선 결상 현미경 시스템 기술개발 사업’ 유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 감사패를 받게됐다. 이동문이 지니고 있는 직함은 (주)광진건설 회장임에 동시에 경주이씨 전라북도 화수회 회장 등 한두 개가 아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다는 이동문을 만나 그의 신념과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현재 제 직함은 ‘풍년’입니다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전 원래 이름이 ‘복동’이가 아니라, ‘풍년’입니다. 부엉새가 저녁에 울면 이듬해 그 동네에 풍년이 든다는 옛 말에서 딴 것이죠. 그래서 지금은 ‘풍년’이란 이름을 제 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 덕분(?)인지 현재 제가 맡고 있는 직책은 한 두어 가지가 아닙니다. (주)광진건설 회장부터 경주이씨 전라북도 화수회 회장, 전라북도에 3명 뿐인 국정자문위원 등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저는 국정자문위원에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나라의 일을 결정하는데 조언을 하는 일인만큼 신경도 많이 쓰이고, 책임감도 큰 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도움으로 사십니까?’
간혹 기자와 같은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하곤 합니다. 바로 ‘누구 도움으로 사느냐?’입니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특별한 고민 없이 “부모님”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 대답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요. 그러나 저는 더 나아가 ‘조상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모시는 것조차 간편화시키고, 심지어는 생략하는 집들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러한 현실에 극구 반대합니다. 상다리가 부러질만큼 거창하게 상을 차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상을 기리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생존해 계시는 어르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작고한 조상은 언제나 선몽해서 자식들을 보살펴주기 마련입니다. 우리 후배들은 조상에 대한 숭고한 얼을 가지고 ‘효’를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항상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사회 민주화,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여러 분야에서 감투를 쓰고 있다보니, 흔히들 저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그건 제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이죠. 1972년, 젊은 혈기에 정치현장에 뛰어들어 신민당 전북 제5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의 혈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는 교육이 어릴 적부터 이뤄져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모교를 잊지 않을 것
대학을 졸업한지 30여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원광대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벗고 나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원불교 군종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군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우리대학 내 엑스레이 현미경 개발을 위해 194억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라도 듣는 ‘원광대학교’는 아직도 제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우리 후배들도 졸업을 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모교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2006년 0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