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근 동문 (체육교육과 67학번)방송국 1기 국장인 윤용근 동문(체육교육과 67학번). 그를 인터뷰 하면서 당시의 학내 방송국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현재 그는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동료들과 후배들을 만나러 우리대학을 방문하고 있단다.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학원방송을 만든 장본인

“대학시절 저를 떠올리자면, 강의실에는 없어도 방송국에는 있었던 학생이었어요. 그만큼 공부보다는 흥미를 찾아 새로운 활동을 했던 기억들이 생각나요” 그가 방송국장이었던 시절은 현 시스템과는 다른 운영체제였다. 현재 방송국은 학교 부속기관으로 속해 있지만 그 때 당시는 학생회에서 주도해 운영됐다.

그 당시 방송국 체제와 현 체제의 동일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냐는 질문에 그는 “점심시간 학우들에게 음악방송을 하고 있는 것과 학내 사건 사고들을 보도해 주는 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라고 답한다. 윤 동문은 당시에 방송을 통해 학생들의 피로를 날려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초창기 방송국은 학생들의 관심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방송 소리가 시끄럽다는 원성을 샀다고 한다.“ 학우들로부터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기 했죠. 그렇지만 저희는 그러한 항의에 연연하지 않고 학업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개설했고 일반 학생들의 아이디어도 제공 받았어요” 이외에도 그는 총학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담당해 방송을 하거나 사회를 맡았었다. 방송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바쁜 일이라도 바로 달려갔다고한다.

방송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제가 국장일 때는 방송국의 규모가 크지 않아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여자국원과 남자국원이 성별에 구애없이 하나 된 방송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그 때 국원들은 저를 ‘대장’이라고 불렀어요.(웃음)”당시를 회상하듯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어 있었다.“ 68년도에는 지금처럼 디지털기자재들이 없었어요. 방송에 관련된 원고는 국원들이 모두 손으로 작성했고 현장은 직접 발로 뛰어야 했죠. 국원들 모두 열정을 쏟아 방송에 임했어요”라며 그 때 당시를 생생하게 전해줬다.

추억 속에 빠지다

“그 당시 우리대학 앞에는 라면 집밖에 없었어요. 주위에는 온통 논과 밭이었죠. 통학버스는 70대 할아버지가 운행하는 단 2대 뿐이었죠.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봤을 때 신기할 따름이예요. 지금처럼 학교의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학생들 간의 얼굴과 이름들도 거의 알고 있을 정도였어요.‘ 어? 무슨 과 몇 학번 누구누구다’ 이렇게 말이죠”

윤 동문은 우리대학의 규모가 커진 것은 좋은일이지만 거기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는 공동체사회 보단 개인주의화가 되고 있죠. 이러한 영향이 캠퍼스 내 구성원들의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예전의 낭만이 있었던 캠퍼스의 모습들이 없어져 아쉽다고. “모교가 발전해 동문으로서 자랑스러워요. 그렇지만 개인주의가 아닌 학생들 서로가 정을 쌓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개인주의의 풍조가 안타깝다는 윤 동문. 학생들간의협력과도움이필요하다고강조했다.

준비하고 생각하는 자세

윤용근 동문 (체육교육과 67학번)그는 현재 37년 째 독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1년에 2번 동료들과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단다.“ 44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방송국이 건재하고 있어 내 젊은 시절의 역할에 대한 보람을 느껴요. 그러나 학생국원들이 방송국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국원들이 좀 더 의욕을 가지고 방송 일에 열정을 쏟으며 서로 간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해요. 또 자주는 아니더라도 현 방송국원들과 예비역 국원들과 가끔 만남을 가져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요즘 들어 학생들이 방송국에 관심이 저조한 것같다는 윤 동문. 방송국에 대해 간직한 애정이 뜨겁게 느껴진다.

학우들에 대한 당부와 앞으로의 계획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되어야 겠죠. 또 ‘나’ 중심이 아닌‘우리’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해요. 지금은 글로벌 시대로 한국 안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대예요. 따라서 학생들은 나를 위한 세상이 아닌 우리를 위한 세상을 만들도록 해야겠죠” 그는 학생들에게 우리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을 방문하는 횟수와 옛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어 무척 아쉬워요. 생이 다할 때까지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과 연락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이 적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사람을 그리워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다시 독일로 떠난다. 그렇지만 그의 모교사랑과 동료 그리고 후배 사랑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주선 기자 pok790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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