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원광언론인상 수상
김은숙 동문(불어불문학과 94학번)은 2012 원광언론인상 수상소감에 대해 묻자[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2″] 이 상은 원광대가 배출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격려의 상으로 여기겠습니다. 또 언론인을 꿈꾸는 예비 후배 기자들에게 존경받는 선배가 되어달라는 당부의 상으로 받겠습니다 [/sws_blockquote_endquote] 라고 말했다.
김 동문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재학생 신분으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전라북도와 서울에서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후 5년간 국회 출입기자로 지냈다. 또 여성중앙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고, 전북도민일보에서 법원검찰 출입기자로활동하며 각종 검찰사건 등을 다루기도 했다. 쉴 틈 없는 기자생활을 하던 중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기자생활을 잠시 쉬다가 2009년 전라일보 경제부에 입사해 현재까지 금융 산업 등 지역경제 전반에 걸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녀가 취재했던 기사들 중 분당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2002년, 분당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공식 분양을 시작하기 전에고위층에게 미리 분양을 해 파장을 일으킨사건)과 김대업 5시간 단독인터뷰 (김대업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사건 관련 핵심증인), 전북은행 법원금고 수탁문제 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전북은행 법원금고 수탁문제 보도는 우리 지방은행인 전북은행이 법원행정처의 차별화된 조항에 의해 법원공탁금고를 맡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집중 제기해 법원 행정처의 규정을 바꾸는 데 일조한 기사로평가받고 있다.
당당한 김 기자
[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2″] 김 동문은 그동안의 보도 활동에 대해 이보도들로 인해 신문사 자체에서 주는 특종상을 받기도 했고 MBC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 2011년 전북기자상 과 전북은 행장상 을 수상했고, 올해 원광언론인상까지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죠. 앞으로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부조리를 지나치지 않는, 정직하고 당찬 기자로 지방언론계에 남고 싶어요 라며 기자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sws_blockquote_endquote]
그녀에게 기자로서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지 물었다. [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2″] (웃음) 사회 부조리를 파헤쳐 사회를 깨끗하게 했을 때라는 상투적인 말은하고 싶지 않아요. 가장 큰 보람은 기사로 인해 나쁜 이를 벌 받게 하고, 착한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아픈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사를 써서 아픔을 공감하고 그를 위해 사회도 같이 아파해줄 때 기자로서 보람을 느낀답니다. [/sws_blockquote_endquote]
기자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힘든 점이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1″]결혼을한 후 가끔 워킹맘으로서의 생활이 버겁다는 생각을 한다고. 기자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인데, 가끔 좋아하는 술도 마시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웃음). 하지만 아무래도 저녁에는 육아를 책임지는 엄마라서 쉽지 않아요. 현실적인 어려움을 찾자면 워킹맘의 비애 같은 것일까요. [/sws_blockquote_endquote]
여고시절부터 키워온 기자의 꿈
김 동문의 부모님은 그녀가 변호사가 되길바랐지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 기자의 꿈을 갖게 됐다고한다. 전주유일여고에 다닐 때 교지편집부에서 활동했던 일이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고.
[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2″]대학에 들어와 1, 2학년 때는 선배들과 놀고 수업에 종종 빠지기도 했죠. 하지만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해야 할 3, 4학년 때는 죽어라 공부만 했어요. 매일 새벽 5시에 도서관에 가서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1, 2학년 때의 학점을 만회해야 했고, 언론고시를 위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며 언론고시학원에 다녔고, 방학 동안에는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기도 했죠[/sws_blockquote_endquote]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기자의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
[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1″]그녀는 기자의 꿈을 갖고 있는 후배들에게 기자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 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과 명예를 떠나 기자 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sws_blockquote_endquote]라고 말했다.
김 동문이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덧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원광대 출신이라는 말은 꼬리표처럼 항상 같이 다녔다고 한다.[sws_blockquote_endquote align=”right” cite=”” quotestyle=”style02″] 모교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지난 14년이 아닌 앞으로의 41년, 그 이후를 늘 따라다니는 평생의 꼬리표 같은 것이지요. 그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후회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sws_blockquote_endquote] 라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임제연 기자 wpdus4464@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