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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제7회 원광언론인상 수상자-박명규(새전북신문 대표이사), 박용근(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
제7회 원광언론인상 수상자-박명규(새전북신문 대표이사), 박용근(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
신문방송사2016-03-19

올 ‘제7회 원광언론인상’ 수상자로 박명규 새전북신문 대표이사, 박용근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이 선정됐다. 원광언론인상은 우리대학 출신 언론인 동문 모임인 ‘원언회(회장 최인)’에서 언론인상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선정한다.
박명규 동문은 지난 1988년 신문방송학과 졸업 이후 전라일보 기자로 입사해 전북도민일보 경제부장과 인터넷 팀장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새전북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용근 동문도 1989년 신문방송학과 졸업한 후 전라일보와 새전북신문을 거쳐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편집자

 

박명규 새전북신문 대표이사

지역언론의 위기 ‘신뢰 회복’이 급선무

모바일 SNS 활성화 필요… 사회에 관심 가져야

▲ 박명규 새전북신문 대표이사

▲ 박명규 새전북신문 대표이사

원광언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소개 말씀 부탁합니다.

저는 지난 1988년 지방언론에 몸담아 온 이래 이 지역의 정치와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취재활동을 해왔습니다. 지난 2004년 새전북신문이 도내에서 유일하게 사원주주회사가 되면서 경영기획실장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2008년에는 대표이사에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바른 언론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저보다 훌륭한 동문 선후배들이 많으신데 ‘원광언론인상’이라는 과분하고 영광스런 상을 받게 돼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학교와 동문, 언론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시절, 궁벽한 농촌마을에서 자랐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간신문을 탐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수단이 신문이었는데, 신문을 통해 접하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 많았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활동상과 사건사고 기사를 읽으며 역사적인 ‘현장’에 있고 싶다는 욕망을 키웠습니다. 신문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다졌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거창한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흥미진진한 현장에 있고 싶다는 욕심 앞서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기자생활을 오랫동안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무엇인가요?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특종기사를 쓴 기억도, 쓸 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때그때 ‘양심이 시키는 대로’ 기사를 썼다고 자부합니다. 주로 전북도와 전주시, 군산시 같은 지방자치단체와 도의회를 오래 출입했는데, 예산낭비 사례를 꾸준히 추적해서 기사화하고, 바로잡은 기억들이 오래 남습니다.

지방의 재정취약성으로 전북지역에 있는 언론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북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신문 산업은 사양 산업이 된지 오래입니다. 최근에는 신문뿐 아니라 미디어 산업 전반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머지않아 전통적인 미디어, 즉 신문과 방송 같은 미디어도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먼 미래뿐 아니라 당장에도 전북의 신문사들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인구마저 날로 줄어드는 지역에 신문사가 난립한 탓이라고 합니다. 한정된 광고시장과 구독시장을 격렬하게 나눠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옳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북지역 언론의 위기를 경제적인 탓으로 돌리기보다 ‘신뢰의 위기’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즉 지역 언론이 그동안 독자와 도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심지어는 신뢰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지탄받는 일들을 거듭해왔습니다.
따라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여깁니다. 도민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 합니다. 도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지자체와 지역사회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면 독자와 광고도 늘어나게 됩니다.
‘신문지’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모바일과 SNS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신문사는 뉴스와 콘텐츠를 생산, 유통,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한데 아직도 신문지에 하루나 이틀 늦은 뉴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늦고, 유용성도 낮은 뉴스와 콘텐츠를 돈을 지불하고 살리 없습니다.

주요 논문으로「지방언론의 보도 분쟁 해결성공에 관한 연구」가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래전에 쓴 학위 논문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데, 당시만 해도 언론이 독자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론권을 주지 않을뿐더러 오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구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감히 언론에 대들어?”하는 생각으로 피해 구제는커녕 집중적인 보도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인리히 뵐이라는 작가의 작품 중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카나리나 블룸처럼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한 인간의 삶을 망치고 사회를 황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오보와 피해 구제 노력 회피를 범죄행위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런 논문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로 삼고자했습니다. 한데 동료와 같은 언론사들의 비난이 두려워 논문을 돌리지도 못하고 아직까지 쌓아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오보에 대한 피해 구제가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되레 최근에는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걸핏하면 구제신청을 내거나 소송을 일삼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많습니다.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싶으신가요?

책을 실컷 읽고 싶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기도 했지만, 전공은 물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보지 못했습니다. 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실컷 읽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

언론인을 준비하는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의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신문을 읽고, 게으름 피지 않고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향후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좋은 신문을 만드는 게 유일한 계획입니다. 도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는 신문,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신문을 만드는 일이 제 업이고, 가야 할 길입니다.

 

 

박용근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인간화’를 꿈꾼다

방패장 정부 절차의 부당성 보도 기억 새로워

▲ 박용근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

▲ 박용근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부장

 

 원광언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소개 말씀 부탁합니다.

귀한 상을 받게 됐습니다. 쑥스럽기도 합니다. (웃음) 특히 열악한 언론 환경 속에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후배 언론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언론인 생활이지만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을 때부터 기자는 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방송기자를 꿈꿨지만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대학 때 원대방송에서 3년 동안 일하며 보도부장과 실무국장을 했습니다. 비록 방송기자는 좌절됐지만 신문기자를 하게 된 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인쇄매제는 전파매체보다 광파력은 떨어지지만, 기록성 등에서 더 매력적인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자생활을 오랫동안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무엇인가요?

저널리스트의 성취감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 놓을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5년 전쯤 공동주택(아파트) 주차장의 크기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자가용은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반면 주차장 면적은 수십 년간 변한 게 없었습니다. 가령 중형승용차 3대가 나란히 주차를 하면 가운데 낀 차의 운전자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비좁았습니다. 운전자가 차량 틈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의 사진을 곁들여 보도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국토교통부는 우리나라 부설 주차장 면적 넓이를 30센티 넓히는 법 개정에 착수했습니다.
2년 전에는 지리산과 덕유산 정상에 있는 대피소의 인권침해 문제를 다뤘습니다. 밤을 새는 등산동호인들이 어깨도 펼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을 안 뒤 대피소 공간의 문제점을 보도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직후 개인칸막이를 설치하고 전용면적을 확대하는 보완책을 마련했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 기자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저의 언론역정 중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2달간 진도취재반장을 맡아 현장을 지휘하며 현지에서 일했습니다. 인터뷰할 때도 눈물이 흘렀고, 기사를 쓸 때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올챙이 기자 시절인 20여 년 전에도 위도에서 발생했던 서해훼리호를 취재했었지만, 세월호 참사는 느낌부터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부안 방폐장 사태를 심도 깊게 보도해 녹색언론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부안 방폐장 사태는 어떤 사건이며, 어떻게 다루셨는지 소개해 주세요.

2003년 부안은 거의 민란 수준의 시위가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졌습니다. 언론은 왜곡보도를 일삼아 민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모두 쫓겨날 정도였습니다. 방폐장의 본질은 방사성폐기물, 즉 쓰레기 처리장을 건설해야 하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부안 사태를 촉발한 것입니다. 대의기구인 군의회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주민 투표도 생략됐습니다. 대신 3000억원의 지역발전기금을 내걸은 셈이죠. 부안군민들의 투쟁은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고 공모를 거쳐 주민투표를 통해 방폐장 부지를 결정하는, 궤도 수정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당시 부안 사태 취재를 전담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군민들의 입장에서 정부 절차의 부당성을 보도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추구하신 언론인의 자세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기자는 카멜레온과 같습니다. 자신을 숨겨야 할 때도 있고, 웃고 울고 화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본인 스스로는 공허하기 짝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휴머니즘에 입각한 기자정신을 강조하며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강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자이기 앞서 ‘인간화’가 돼야 합니다. 21세기에는 ‘선(善)’이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지며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싶으신가요?

저의 대학시절은 거의 방송국 생활과 연관돼 있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 크게 달랐습니다. 지금 후배들이 대학의 낭만을 1학년 때부터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역설적으로 내가 다시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당시 매진하지 못했던 학업에 매달릴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면피 학점을 유지했었음을 감안하면요. (웃음)

언론인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언론자유화 이후 매스컴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매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언론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책임감마저도 담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종이신문과 방송이 도태되기 시작하고, 온라인 뉴스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과거 주류였던 신문과 방송에서 컴퓨터 시대로 바뀐 언론환경은 근자에 다시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즉 핸드폰 하나로 모든 국민이 기자가 돼버린 것입니다. 뉴스 공급 또한 핸드폰으로 못할 게 없습니다. 다분히 언론인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혼란이 야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어느 분야를 지향할 것인지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뒤 기승전결이라는 논리에 입각해 글쓰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앞으로의 향후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퇴직이 5년쯤 남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은 퇴직 후 자유인이 되고 싶지 또 구속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힐링하며 사는 것이 어떤 길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원대신문 전영신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