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광인터뷰

‘올림픽의 영웅’… “후배들이 선배들의 영광 이어가길” -김동문 교수(자연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
‘올림픽의 영웅’… “후배들이 선배들의 영광 이어가길” -김동문 교수(자연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
신문방송사2016-04-11

김동문title

김동문1

우리대학 김동문 교수(사회체육학과)가 최근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이하 FISU) 기술위원으로 선임됐다.
배드민턴 경기장을 누비던 ‘올림픽의 영웅’에서 모교 강단에 서기까지 그를 받쳐준 신념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이하 FISU) 기술위원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대학 배드민턴 팀은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팀이에요. 대한민국 배드민턴 팀이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6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땄는데요. 이 중에서 원광대학교 출신 선수가 획득한 메달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예요. 사실상 절반이나 마찬가지이죠. 우리대학은 배드민턴 명문 대학으로 유명하답니다.

 

우리대학 배드민턴 팀은 국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유명한데요. 그 인지도를 실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배드민턴 팀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우리 센터는 타인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2007년 글쓰기센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교육기관입니다.
올해부터 의사소통교육센터로 확대개편됐습니다. 이제는 교육기관 의 울을 넘어 소통기관 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강의형태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기존의 일방향적 강의방식을 지양하고 쌍방향적인 강의방식을 도입하여 활동(activity) 중심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도입할 예정입니다.
수동적인 수요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향유자 가 될 수 있도록 강의방식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의사소통교육에서 주도적인 느낌이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센터가 주력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기본 요소인 읽기 , 쓰기 , 말하기 의 연계 교육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컴퓨터로 비유하면 다양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받아들이고(input), 사고의 과정(cpu)을 거쳐 적절하게 표현(output)해야 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장애가 있으면 제대로 된 산출물을 기대할 수 없지요.
현재 85회째 진행된 세계고전강좌 읽기가 인풋(input)역량 강화 교육이라면, 매년 10회 가량 열리는 글쓰기 강좌는 아웃풋(output) 역량을 키우는 교육입니다.
센터에서는 1:1 글쓰기 클리닉 과 소규모 글쓰기 그룹지도 등을 통해 수준별 의사소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올림픽 영웅’으로 유명한 금메달리스트이시기도 한데요. 배드민턴을 언제 처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드민턴을 처음 만났어요. 특별활동 시간 있잖아요? 거기서 육상부로 활동을 하다가 배드민턴부로 옮겼어요. 훌륭한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꿈도 그때 처음 품었어요.

 

국가대표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즐거운 일화는 무엇인가요?

즐거운 일화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뛰었으니까요. 군대처럼 새벽 여섯 시에 음악 소리 들리면 다들 똑같이 기상하고, 훈련, 식사, 취침, 모두 다 정해진 시간대에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참 오랫동안 했어요. 들어갈 땐 대표 팀 막내였고, 나올 땐 최고참이었죠. 13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네요.

 

그렇다면 그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선수생활 동안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처럼 딱히 슬럼프를 겪지도 않았네요. (웃음) 크게 다친 적도 없고요.
 아, 1996년도에 아틀란타 올림픽이 끝난 직후는 조금 기억에 남네요. 그 당시 저는 너무나 지친 상태였고, 쉬고 싶었어요. 그때 또 허리에 살짝 디스크도 와서 입원을 했었어요. 병원에서 한 달 이상 입원을 해야 한다고 판정을 내려주더라고요. 근데 막상 누워서 지내자니 계속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서 퇴원을 빨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웃음)
 힘든 선수 생활 동안 가장 힘이 됐던 건 팬들이에요. 그 당시 인터넷이 갑자기 활성화되면서 온라인에 팬클럽 같은 게 생겼거든요. 그때 올라온 응원이나 메일, 팬레터 등은 제가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때 만난 팬들과는 아직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제는 스타와 팬이 아닌 편한 선후배 사이로 만나고 있습니다.

김동문2

혼합복식조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라경민 전 국가대표와 결혼하셨습니다.

오래됐죠. 선수촌에서 훈련도 같이 하고, 시합도 같이 다니고, 쉴 때도 같이 쉬고, 행사도 같이 참여하고……. 가족보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나중에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하는 사이가 됐으니까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동반자로서의 인연을 맺게 됐어요.

 

은퇴 후 캐나다로 유학을 가셨습니다. 유학을 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늘 은퇴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 그런 계획을 세웠었어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그 계획을 좀 더 구체화했고요. 물론 아테네 올림픽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해요. 아무튼, 대학 교수가 되어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대학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로 영어부터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때 마침 대한체육회에서 ‘외교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라 해서 메달리스트를 대상으로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총 지원자 수는 40~50명인데, 선발 인원은 5~6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근데 제가 무척 운이 좋게도 그 중에서 선발이 됐어요. 그래서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게 된 거예요.

 

유학 생활 중에 캐나다 배드민턴 대표 팀 코치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캐나다의 훈련 환경은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캐나다의 경우, 비싼 훈련비용을 모두 다 본인 스스로 부담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의무적으로 운동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본인들의 취미생활이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운동을 하는 분위기에요. 보통 학생들은 방과 후에 남는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운동을 하는데, 개중에 남들보다 두각을 드러내는 친구들이 전문적인 선수의 길을 걸을 기회를 얻는 거죠. 물론 강습비용 부담은 모두 다 학생들의 몫이에요. 그러므로 가정형편이 어느 정도 되는 친구들이 선수의 길을 걷죠.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어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여자복식 대표 팀이 일명 ‘져주기 게임’을 해 실격을 당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예전에도 ‘져주기 게임’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암암리에 진행되던 이런 관행이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이슈화된 이유는 당시 IOC 위원장이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관중들은 올바른 경기를 볼 권리가 있어요. 더군다나 올림픽은 매우 큰 이벤트잖아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익을 위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후배들은 지금쯤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서 막바지 대회를 뛰고 있을 거예요. 굉장히 힘든 스케줄이겠지만 잘 이겨내서 올림픽 출전권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고, 그동안 선배들이 쌓았던 영광이나 명예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덧붙여, 본인 스스로에 관해서는 물론이며 상대 팀들에 관해 분석을 하는 데에도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즉,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교육자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모교 선배로서, 또 엘리트 선수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대학 체육관의 선수들에게는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하면 미래에 대학 교수 같은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일반 학생들에게는 수업을 통해 선수 시절 저의 경험담이나 노하우 같은 것을 생동감 있게 얘기해서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또한, 저는 학생들에게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편하게 상담하러 찾아와서 많은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실제로도 그런 과정에서 저 역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고요. 단지 어려운 교수님이 아니라 편하면서도 배울 게 많이 있는 교수님으로 비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큰 목표도 중요하지만 가벼운 목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이루는 것도 중요해요. 학생들이 그러한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가면서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 이 지역에 있는 원광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어요. 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나 다른 일을 할 때나 언제든지 원광인이라는 자부심을 크게 느끼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원광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슴 속에 품고 날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