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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자기 연민 금물, 아픔을 이기는 것이 청춘”-박범신 작가(국어국문학과 72년 졸업)
“자기 연민 금물, 아픔을 이기는 것이 청춘”-박범신 작가(국어국문학과 72년 졸업)
신문방송사2015-11-30

[봉황각에서 만난 사람] "자기 연민 금물, 아픔을 이기는 것이 청춘" 박범신 작가(국어국문학과 72년 졸업)

박범신 동문(국어국문학과 72년 졸업)

한국 문단의 거성이자 우리대학의 자랑스러운 동문인 박범신 작가(국어국문학과 72년 졸업)를 만났다. 박작가에게서 그의 근황과 작품 세계 그리고 청춘들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가을을 맞아 단풍이 참 예쁜데요. 작가님의 근황이 매우 궁금해집니다. 작가님의 근황을 간단히 알려주세요.
지난 달 26일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논산 걷기 대회에서 독자, 시민들과 함께 가을맞이 걷기를 했습니다. 또 최근 출판사 문학동네 에서 단편 전집 7권을 냈고, <작가이름 박범신>이라는 이름의 문학앨범도 신간했습니다. 가장 최근 발간한 소설로는 <당신-꽃잎보다 붉던>이 있습니다.

 최근작인 장편소설 <당신 – 꽃잎보다 붉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70대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먼저 치매에 걸려 죽게 되는데 얼마 못 가 아내도 치매에 걸려 서서히 죽어갑니다. 두 노인의 인생과 연애사,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와 정치적 변화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역사와 삶의 본질이 접목되었기에 젊은이들도 읽기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안에서 삶과 죽음, 윤리성에 대해 조명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사랑에서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죽기 직전에야 경험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순애보이기도 한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분 역시 우리대학에서 처음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신작 소설인 <당신-꽃잎보다 붉던>이 부부가 치매를 앓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는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인 만큼, 올해로 일흔을 맞이하신 작가님에게 부부의 연이란 무엇인지 여쭤 보고 싶네요.
역시 그 소설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소설의 내용 역시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사랑의 윤리성에 대해 다루고 있지요.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반성하게 되는 낭만이랄까요. 저에게도 ‘당신’이란 말의 무게는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자고로 사랑이란, 상대방의 전부를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또 서로의 위치가 공평해야 하기에 오랜 시간 그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사실 지금도 많이 힘들어요.(웃음) 이러한 느낌을 머금고, 죽음을 앞두고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박범신 동문 인터뷰사진

▲ 수덕호 타임스테이션 2층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박범신 작가

작가님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부터 세대를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으면서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유지하고 계신데요. 글의 소재를 얻어내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요즘 세태를 많이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신작 소설을 통해 설명해보자면, 지금 65세의 10% 이상이 치매환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노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망각의 병인 치매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의 장인어른께서도 치매로 돌아가셨고, 누님께서도 치매 투병 중에 계십니다. 그것을 보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삶의 질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 단편적인 생각들이 모여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어떠한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이야기의 플롯이 구성되기도 합니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많은 노래를 들으며 상상해보고 그 안에서 소재를 찾는 방법도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장편소설 <소금>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 에 나오듯이 작품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 시절에 흔했던 아버지의 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의 유년시절 경험도 첨가가 된 이야기인지요.
그렇죠,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된 것 같습니다. 요즘 아버지들은 참 고충이 많죠. <소금> 속에서는 노부가 아이들의 소비를 이기지 못하고 가출합니다. 작품 내에선 조금 과격한 표현일지 몰라도, 저는 요즘 젊은이들 중에도 소비만 반복하며 부모를 괴롭게 하는 이들을 ‘빨대’라고표현합니다. 부모 등에 붙어서 소비만 빨아내는 것이죠. 반대로 뱉어내는 것은 없어요. 그런 젊은이들 대부분이 과소비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소비 노예로 전락해 버렸죠. 자신의 정체성만 찾으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픈 일이죠.

 요즘 문단에 나타난 신인 작가들 중에 눈여겨보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이기호, 김연수, 박민교, 김숨 같은 좋은 작가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들이 중견 작가가 되었습니다.(웃음) 시간이 참 빠르죠. 특별히 눈여겨보는 신인 작가라고 하면 ‘이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윤이형 작가가 있는데, 이야기의 층이 매우 넓은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나오는 작가들 저도 잘은 몰라요.(웃음)

 우리대학을 졸업하신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네요. 오랜만에 본교를 방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번 방문을 통한 감회가 매우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년에도 원광대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당시엔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스트레스도 쌓여 있었고, 작가로서 조금 더 밀실에서 글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교의 일이다 보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었어요.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방문은 예정된 강연만 하러 온 건 아니에요. 후배들이 걷고 있는 지금의 캠퍼스도 둘러보고 눈도 마주치고 손도 잡아보며 스킨십하러 왔습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작가님이 우리대학을 다닐 때는 캠퍼스의 외관이나 학생들이 생활하는 모습 등 많은 부분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대학생활이 궁금해지는데요. 혹시 학창시절 기억나는 캠퍼스의 모습이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우선 대학 재학 중에 연애를 통해 평생을 함께할 ‘당신’을 얻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겠지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당시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내가 재학할 당시에는 캠퍼스도 훨씬 작고 시설도 형편없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열악한 환경 덕분에 숨 가쁘게 살고 있는 요즈음 대학생들보다 깊이 사색하고 정서에 젖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의 대학생들이 요즘 대학생들보다 더욱 행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한다고 하여 영원한 청년작가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로서 멋진 수식어입니다만, 이따금씩 작가님께 부담으로 찾아오리라 짐작됩니다. 독자들의 이러한 기대를 마주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당연히 버거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청년이란 단어는 19세기 말부터 생겼습니다. 소년과 장년으로 나뉘다가 요즘엔 청년이란 말을 미끼로 젊은이들을 혹사시키지요. 듣기에는 청년이란 말은 멋지게 들리지만, 요즈음 세상은 청년의 시기를 무한정 늘리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에게 청년 작가라는 수식어는 마치 현역 작가로 불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모든 현역 작가가 저에겐 열렬한 청년 작가나 다름 없습니다. 나의 소망 역시 나이로 인한 권위나 세월에 기대지 않고, 강력한 현역 작가로 오래 남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학에 대한 나의 열렬한 태도를 인정해주는 독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적인 입장으론 뜨겁게 받아들이지만, 개인사로서는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이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 분들이 많으리라고 짐작됩니다. 향후 집필 계획에 대하여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말했다시피 제 계획의 큰 틀은 역시 강력한 현역 작가이자 청년 작가로 지내는 것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올 겨울부터 대만의 문학잡지와 동시 연재 계획이 있습니다. 한 두어 달만 놀고 대만 독자와 소통할 준비를 해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향후 계획이라면 역시 왕성한 작품 활동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학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이 쓸쓸한 건 경쟁구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 경쟁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청년들을 보면 매우 안쓰럽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쓸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 노예를 탈출하는 법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면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안다면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아픔을 이겨내니까 청춘이다”라고 말이죠. 시간과 기운이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에너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원대신문 강우현 기자 rkddngus1@wku.ac.kr
원대신문 홍진웅 기자 1ronic@w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