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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인터뷰

위대한 은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의미는?(한글날 기념 인터뷰, 국어국문학과 임석규 교수)
위대한 은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의미는?(한글날 기념 인터뷰, 국어국문학과 임석규 교수)
신문방송사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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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신문>은 임석규 교수를 만나 우리말 의 소중함과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자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영어 문장이나 영어 단어를 활용할 확률이 높겠지요. 한자를 이용할 가능성도 있겠네요. 여기서 문제는요. 영어를 활용할 경우, 아니면 한자를 활용할 경우, 지금 질문하시는 기자 두 분께서는 과연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에요. 제가 두 분을 무시해서가 아니에요. 그렇게 된다면 저 또한 글로는 의사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세종께 더욱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주에 가면 영릉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고마움을 표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국어를 한글로 판서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니 세종대왕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은인으로 받들고 살아야겠지요.

언어생활에 편리를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세종대왕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될 것이 있습니까?

과학, 음악 등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글날 관련 인터뷰이니 다른 쪽 얘기를 하는 것은 그리 반갑지는 않고요.

사실, 한글 창제는 문인들에게도 엄청난 특혜를 주었다고 아니 지금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은 어미가 발달해 있습니다. 아름답다, 아름답구나, 아름답군, 아름답지, 아름다워, 아름다워라, 아름답네 등 표현이 무척 많잖아요. 그런데 그 어감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안 그런가요? (잠시 일동 침묵) 그런데 이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美하나로 충분하잖아요. 말이 좋아 충분한 것이지. 절름발이 표현이라고 해야겠지요.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 것을 어떻게 표현하자는 것인가요.

고려시대 김부식의 라이벌이라고 알려진 정지상은 유명한 송인 이라는 한시 작품을 남겼습니다. 매우 높이 평가되는 시입니다. 그 한시 첫 구에 보면 우헐장제초색다 라고 나옵니다. 초색다 를 어떻게 번역할까요. 풀草, 빛 色, 많을 多이니 풀색이 많구나 라고 할까요?

풀빛이 짙구나 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무언가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지상에게는 분명 좋은 우리말이 떠올랐을 거예요. 근데 표현할 말은 多정도였다는 것이지요. (풀빛이) 이들이들/넘실넘실 이라고 하면 보다 시적일 것 같지요. 그런데 이들이들/넘실넘실 을 표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 만약 머릿속에 이들이들 이라는 말이 떠오른 경우 그냥 그 음 그대로 적으면 되잖아요. 누구 덕분에요? 당연히

세종 덕분이지요. 요약하면 한글 창제로 인해 진정한 문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 덕분에요. 네 그렇습니다. 세종 덕분에요.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지요. 한글 창제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접목시켜 볼까 합니다. 특히 여성들은 현대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사회에 진출하잖아요? 세종대왕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암글 이라할 정도로 훈민정음은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게 됩니다.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 싹이 터서 근대사회,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면 되겠지요. 근대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글자였습니다. 지배층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백성들을 수탈하여 내 잇속을 챙기려 합니다. 백성들이 고금의 많은 지식을 얻게 되면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 지식은 무엇으로 얻을 수 있나요? 바로 읽기 쉬운 글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그것이 한문으로 되어 있다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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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중요한 질문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질문이 현대인의 문자 생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문자 생활을 했을까요? 한자를 빌려서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용이 좀 길어질 가능성이 있겠네요? 만약에 2천 년전에 어떤 사람, 즉 개똥이가 살았다고 합시다. 그 개똥이가 등잔을 처음 제작했다고 칩시다. 그것을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합니다. 한자가 들어와 있으면 한자에 의지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한자를 익히는 것은 아니지요? 극소수를 제외하면 엄두도 못 냅니다.

개똥이가 한자를 익히지 않았다면 또 한자가 들어와 있지 않았다면 동굴에 그림을 그려서 알리는 방법이 있겠네요. 등잔을 그리고 개똥이의 형상을 그리면 되겠죠.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림의 의미를 후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개똥이가 한자를 익혔다면 등잔을 제작하다를 어순에 맞게 한자로 배열하면 됩니다. 製作燈盞이라고 하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개똥 이 문제입니다. 똥으로 소리 나는 한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한자를 이용해 견변(犬便) 이라 씁니다. 개를 뜻하는 견자와 똥 을 뜻하는 변 자를 활용합니다. 변 자는 대변, 소변 의 변자입니다. 아시지요? 바로 견변 이라 쓰고 개똥 이라 읽는 것이지요. 문자 표현 욕구가 생긴 초창기에는 개똥 과 같은 인명이나 지명 등을 표기하려 합니다. 인명의 예 중에는 혁거세 가 대표적이겠지요.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 라고 알고 있지만 赫居世라 쓰고 붉으니/붉은해 라고 읽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원효 는 물론 그의 아들 설총 도 정상적으로 불린 이름은 아니겠지요. 거칠부/거칠보 에 대해 황종(荒宗) 으로 적힌 것만 보아도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칠 황, (대들)보종 을 모두 뜻으로 읽으면 거칠보 가 되겠지요. 즉 황종 이라 쓰고 거칠보 로 읽는다는 원리이겠지요.

우리대학은 익산에 있습니다. 익산은 그 전에 솝리/솜리 라고도 불렸는데, 이 솜리 도 그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우리 학교가 있는 익산이 마침 솜리 이니 그것에 대해 짧게 얘기해 보죠. 익산은 그 전에 이리 라고 불렸죠? 이리(裡里, 솝 리>속 리, 마을 리) 의 이 자가 바로 속 리 인데요. 속 의 옛말이 바로 솝 입니다. 몽고 항쟁기에 제작되었다고 하는 ≪향약구급방≫이 있습니다.

거기에 바로 솝 이 등장합니다. 물론 한자로 소읍(所邑)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솝마을 , 솝리 정도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솜리 를 두고 예전에 솜이 많이 나는 마을 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리의 옛 지명은 솝리 입니다. 솝리 의 솝 을 소브 라고 발음하면 부여의 옛 지명 소부리 와 같아집니다. 결국 裡里라 적고 소부리/솜니 비슷하게 읽었던 것이에요.

소부리 , 솝리[솜니] 는 그 지역의 중심이라는 뜻이지요. 그 지역의 센터(솝>속, core) 라고 하면 되겠지요. 사실은 이들이 서울(셔), 서라벌 과 다 같은 뜻으로 파악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자를 빌려 표현하는 방식은 문자생활을 하기가 너무 불편하잖아요? 당시에 한글이 있었다면 소부리 , 솝리 라고 쓰면 되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리라고 쓰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금성 이라고 쓰니 너무 어렵잖아요. 이런 것들은 고유명사 표기이고요. 음, 사실은 극락에 가기를 바라고 에서 바라고 같은 것까지도 제대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향가에서 望良古로 나타납니다. 바랄 망, 좋을 량, 예 고 에서 중간의 良은 아 와 라 로 읽힙니다. 누가 망량고 로 쓰고 바라고로 읽는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상당한 지식인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위대한 은인 세종대왕이 당시 백성들, 지금 후손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한 것을 자유롭게 옮겨 적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감사의 뜻을 이럴 때 표하라고 한글을 만드셨는데 그럴듯한 어구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로는, 글쎄요, 죄송할 따름이네요.

한글날을 국경일로 다시 정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하자는 사람도 많잖아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편한 삶을 살게 해 준 분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니 국경일은 당연하다 하겠지요. 위에서 말씀드린 고마움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인터넷상에서 외계어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우리말을 사용하면 좋겠지요. 세종께서 우수한 글자를 만드셨으니 그 우수한 글자를 이용해 좋은 쪽으로 쓰면 좋겠습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중매체에서 한글날이 되어 고유어가 없어져 가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한글날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마치 강의시간에 한글로 강의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강의는 한국어로 하지 한글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글로 강의를 한다면 계속 판서만 해야겠지요. 한글의 세계화와 한국어의 세계화는 개념이 다르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것은 한글 세계화의 일환이 라고 보면 될 건데요. 혹 한국어가 미국 영어를 물리치고 세계화되는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원대신문 양수호 기자 soohoo6588@wku.ac.kr
원대신문 강우현 수습기자 rkddngus1@wku.ac.kr